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지리산 무박 종주 산행!!
<지리산 천왕봉 정상에서>
1. 산행일시 : 2007년 7월 29일 00 : 00 신세계예식장 출발
2. 산행시작 : 2007년 7월 29일 03 : 15 성삼재 출발
3. 산행코스 : 성삼재-노고단-임걸령-삼도봉-화개재-토끼봉-명선봉-연하천대피소-삼각봉-형제봉-벽소령-
덕평봉-칠선봉-영신봉-세석평전-촛대봉-삼신봉-장터목산장-제석봉-천왕봉-법계사-중산리
4. 산행시간 : 15시간
5. 산행거리 : 성삼재-2.5km-노고단-20.4km-세석산장-3.4km-장터목산장-1.7km-천왕봉-7.4km-중산리.
총 35.4km
6. 날 씨 : 맑음/흐림
-. 산행개요 :
‘한 없이’ 높고 깊고 넓은 지리산! 은 ‘산속의 산’들을 안고 있고, 하나하나가 비경을 간직한 15개의 지능선과 15개 옥류청계 계곡을 품고 있는 사람의 산! 생명의 산! 이다.
지리산 종주는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로망’이다. 이 로망에는 ‘졸업’이 없다. 어찌어찌 시간을 내어서 지리산 종주를 해봤다고 해서 그 로망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어둑어둑한 새벽 성삼재에서 첫발을 내닫을 때의 긴장감이며, 세석산장에서의 쏟아질 듯한 별들과 함께 한 밤, 우의를 입고 청정한 숲을 걷던 걸음. 또는 천왕봉에서 마주친 용솟음치는 일출에 대한 영상이 시도 때도 없이 선명하게 떠오르게 마련이다. 그래서 가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은 뛰고 마음은 흥분되는 것이다.
지리산 종주는 사실 한 여름을 살짝 비낀 때가 좋다. 그리고 지리산을 종주한다는 것은 사실 ‘산을 타는 일’만은 아니다. 지리산 주릉 종주는 이른바 ‘산 꾼’으로서 거듭나는 통과 의례적 과제로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종주의 의미는 각자 다르다. 누구에게는 자신 안의 두려움을 떨쳐버리는 일이기도 하고, 또 누구에게는 새로운 시작의 용기를 얻는 길이기도 하다.
특히 성삼재에서 시작하는 무박 종주 산행은 등산경험과 체력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 코스이다. 보통 새벽 3시 이전에 성삼재에서 출발해야 천천히 즐기면서 천왕봉으로 해서 중산리로 내리설 수 있다.
개인적으로 지리산 산행은 50번은 넘을 것 같다. 천왕봉만 15번째이고, 종주만도 3번째이다. 2007년만 해도 1월 28일 당동-고리봉-만복대-다름재-월계리의 설경산행과! 5월 27일 거림골-세석평전-촛대봉-장터목-중산리의 철쭉산행! 그리고 이번 무박 종주산행으로 3번째 지리산 산행이다.
-. 산행기
갑자기 지리산 종주가 하고 싶었다.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지리산을 걷고 싶었다. 자연과 함께 숲속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걷고 싶었다. 그래서 그날 지리산 무박 종주산행을 신청하고 도시락 하나와 물 2병만 넣어가지고 7월 28일 밤 12시. 즉 7월 29일 0시에 출발지인 신세계 예식장 앞으로 가서 지리산 무박 종주산행 버스에 승차했다.
지리산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잠깐 잠을 청하다 거창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지리산 산행 출발지인 성삼재를 향했다. 새벽 2시 30분. 버스는 인월을 통과하고 뱀사골에 들어서고 있었다. 나는 등산화를 다시 고쳐 매고 서서히 산행준비를 했다.
03시 15분. 버스는 성삼재에 도착했다. 나는 버스에서 내려서자마자 헤드란턴을 켜고 노고단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완만한 경사 길에 포장이 잘되어 있는 길. 새벽의 맑은 공기와 이름모를 새들의 소리와 함께 한여름 밤의 지리산은 역시 시원했다.
코재에서 화엄사 계곡의 야경을 바라보면서 숨을 크게 한 번 들이 쉬고는 노고단을 향해 걸었다. 오랫동안 느끼지 못했던 상큼함이 한순간에 다가왔다. 노고단대피소에서 쉬지 않고 바로 노고단을 향해 또다시 걸었다.
04시. 노고단에 도착. 밤이 아니고 밝은 낮이라면 이곳에서 보는 천왕봉은 다른 어느 곳에서 보는 것보다는 그 경관이 다르다. 길고 긴 능선을 겹겹으로 거느리면서 솟은 천왕봉의 웅지가 매우 독특하게 시야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곳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는 넘어야 할 봉우리가 20여 개가 넘는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깨끗하고 시원한 바람을 마음껏 들이 마시고는 본격적인 능선 길인 오솔길에 들어섰다. 평지와 다름없지만 숲과 돌길이 이어지고 나뭇잎 물기가 옷에 베이고 바위의 습기가 미끄러워 조심스러웠다. 이제 어느 정도 워밍업이 되었는지 걷는 것과 호흡이 한결 수월해진 느낌이고, 눈에 익은 길이라 쉽게 걸었다. 돼지령을 지나고 임걸령에서 물맛이 가장 좋다는 샘물을 한 쪽박 마셨다. 아직도 날은 캄캄했다. 오르고 내리고 하면서 얼마나 걸었을까?
<노루목에서 바라본 노고단의 새벽 여명 전경>
<노루목에서 노고단을 배경으로>
6시 10분경. 노루목에 다다라 뒤를 돌아보니 노고단에 아름다운 여명이 울리고 있었다. 황홀경이었다. 그 전경을 사진으로 한 컷하고는 몇 번이나 올라가본 반야봉을 뒤로하고 다시 말없이 삼도봉을 향해 걸었다. 걷기를 10여분. 삼도봉에 이르자 눈부신 햇살이 삼도봉과 반야봉을 비추고 있었다. 신비롭다는 생각을 한다. 잠시 불무장등을 바라보고는 다시 화개재를 향했다. 지금부터 나무계단이 이어진다.
<삼도봉에서 바라본 천왕봉 전경>
<아침햇살이 비치는 삼도봉에서 반야봉을 배경으로>
<화개재에서 바라본 목통골 전경>
<화개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6시 45분경. 화개재에 도착해서 이른 아침의 깊은 목통골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계곡은 서서히 어둠이 걷히기 시작하였다. 계곡에서 올라오는 안개가 주위의 산자락을 타고 넘을 때마다 시야에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는 산의 모습이 장관이어서 배낭을 내려놓는 것도 잊은 채 서서 얼마간 넋을 잃고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이 얼마나 오랜만에 보는 장쾌한 장면인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산처럼 묵묵히........
<아침햇살을 맞으며 토끼봉 오르는 능선길에서>
토끼봉을 한 발짝 한 발짝 오르는데 숲 냄새가 너무 좋다. 새소리도 들린다. 벌레소리도 들리고. 바람소리도. 아침이슬도 반짝인다. 그리고 아침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신비롭게 비춘다. 감탄! 사진을 다시 한 컷!
연하천 부근은 숲과 함께 이름 모를 야생화의 천국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깊은 수림을 걷는 분위기에 젖어들고 있다. 토끼봉을 지나고 명선봉을 지나고.......
8시경. 연하천 대피소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아침식사를 한다고 조금은 복작인다. 나도 자리 한 쪽을 마련하고는 식사를 간단히 했다. 그리고 세수를 하고서 잠시 앉았다 다시 형제봉을 향해 걸었다. 역시 우거진 숲길이 좋다.
햇볕이 종종 내리 쬔다. 그래도 숲이 우거져서 더운 줄 모르고 걷는다. 형제봉을 지나고
<구 벽소령 안내판 앞에서>
9시 30분경. 벽소령에 도착했다. 그늘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신발을 잠시 벗었다. 물병에 물이 거의 바닥이었다. 물을 받으려고 보니 식수대는 사용 못하게 해놓고 100m 아래 임시 식수를 사용하라는 안내문이 있다. 그냥 가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아래 선비샘을 향해 걸었다. 구 벽소령 안내표지판에서 사진 한 컷을 하고는 선비샘까지 바로 걸었다. 햇볕이 조금은 따갑게 느껴진다.
10시 30분경. 선비샘에 도착. 2개의 물병에 샘물을 가득 받고 쪽박에 물을 두 번이나 마셨다. 정말 시원했다. 가슴이 싸늘한 정도였다.
<덕평봉에서 천왕봉을 배경으로>
오르막 내리막 덕평봉, 칠선봉을 거쳐 길고도 급경사인 철제계단으로 영신봉을 거쳐 고지대에 넓게 펼쳐진 세석평전의 대피소까지 2시간 30분 정도 걸었다. 지리산 종주길 중 가장 힘들게 느껴지는 구간이다. 그래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지리산 숲길을 아끼고 즐기면서 걸었다. 행복했다. 아주 행복했다. 이렇게 산행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 자신이 너무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하루하루의 소중한 삶을 느낀다. 후회 없는 삶! 멋있는 삶! 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바르고 분명한 삶!
<칠선봉 앞에서>
13시경. 세석대피소에서 점심을 간단히 먹고 다시 물병에 물을 채우고는 촛대봉을 지나고 삼신봉 봉우리에서 잠시 쉬었다. 어제 잠을 한 숨도 못잔 탓인지 조금 피곤함을 느꼈다. 그래도 지리산의 바람다운 시원한 바람이 그 피곤함을 씻어주었고 몸을 가볍게 해 주었다. 나는 장터목산장을 향해 또다시 걸었다. 그런데 연하봉 중턱에 비구름이 엄청 지나고 있었다. 곧 한줄기 소나기가 쏟아 부을 것만 같았다. 그래도 비구름 속을 걸으니 시원했다. 선경이었다.
<비구름에 휩싸인 연하봉 가는 길 전경>
15시 20분경. 장터목산장에 도착했다. 초코렛과 영양갱으로 배고픔을 잠시 보충하고 다시 제석봉을 향해 바윗길 오르막을 걸었다. 더욱 힘이 난다.
<비안개에 휩싸여 있는 신비스러운 고사목 지대>
<제석봉 고사목 지대에서 한 컷!!>
제석봉 고사목 지대는 비안개로 인해 선경을 이루고 있었고, 구름이 감도는 천왕봉은 보기만 해도 신비롭다. 산행을 할 때마다 보고 또 보아도 다시 오고 싶은 곳이다. 40여분을 비안개 속에서 바윗길을 오르고 통천문을 지나 천왕봉에 도착했다.
<천왕봉 정상에서>
16시경이었다. 사람이 없다. 천왕봉 정상석만 홀로 비안개 속에 서 있다. ‘韓國人의 氣像 여기서 發原되다. “ 가슴 깊이 새긴다.
중산리 방면에서 두 사람이 올라온다. 사진 한 컷을 부탁했다. 그리고는 중산리 방면으로 가파른 내리막길을 빠르게 걸었다. 18시까지는 도착해야 했다. 법계사까지 뛰다시피 걸었다. 한 줄기 소나기가 세차게 내린다. 비옷을 입고 내리막길을 조심스럽게 걸었다.
16시 50분경 법계사에 도착했다. 식수대 아래에서 신발을 벗고 발을 씻었다. 피로가 확 가신다. 10분쯤 쉬고는 다시 중산리를 향해 빠르게 걸었다. 칼바위를 지나고 중산리 매표서 10분을 앞두고 계곡으로 내려섰다. 세차게 흐르는 계곡물에 머리를 한 번 담그고 세수를 했다. 그리고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발을 씻었다. 발이 시릴 정도로 차가웠다. 산행의 의미를 되새긴다. 천천히 식당가로 걸었다.
오후 6시15분이었다. 15시간의 산행! 또 한 번의 지리산 무박 종주 산행을 마쳤다. 남은 생을 더욱 보람되게 살기 위한 지리산 무박 종주 산행이었다.
내일 다시 지리산 윗새재 조갯골로 해서 하봉 천왕봉을 거쳐 신비의 칠선계곡을 산행해야겠다.
2007년 8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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