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병통치 등산ㅣ의학전문가 견해] 관절염환자도 등산이 좋다.
-이 근후 박사, “등반으로 수도자 경지에 오를 수도”-
흔히 등산을 종합병원에 비유할 만큼 건강에 도움을 주는 운동이라 일컫는다. 산을 오르는 데 절대적 신체기관인 다리뿐만 아니라 팔과 허리 등 전신 운동을 통해 온몸을 건강하게 해주고 또한 스트레스 해소와 집중력 강화 등을 통해 정신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등산을 통해 건강을 되찾은 이들은 많이 있다. 심혈관 질환이나 과체중으로 인한 성인병 환자, 암 환자, 심지어 척추나 관절에 문제가 있는 이들 중에서도 등산을 통해 건강을 되찾았다는 얘기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등산을 두고 왜 ‘종합병원’이라 표현하는 것일까? 고교 시절부터 등산을 해온 김유영 교수(65·라테르네 회원·상계백병원 호흡기 알레르기 내과)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이고 순수한 욕망은 아마‘걷는다’는 것일지도 모른다”며 “어린아이가 첫 걸음마를 뗄 때 스스로 대견스러워하듯이 걷는다는 것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인간다움의 표정이요, 건강에 대한 확증”이라 말한다.
-청계산 옥녀봉을 오르는 등산인들. 숲에서 내뿜는 피톤치드는 육체적인 건강에 도움을 주고, 숲 산행은 마음의 안정을 준다. <사진 정 정현 부장>-
김 교수는 특히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고 바닥이 고르지 못한 산길을 걷는 등산은 ‘자연스런 전신운동’이라 표현한다. 주체인 다리는 물론 팔의 근육과 관절, 가슴과 몸통의 근육, 척추 등이 적절히 그리고 율동적으로 움직이며 이에 따라 심폐기능과 순환계 기능이 좋아지고 신진대사가 활발해지는 일련의 유기적인 반응이 자동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가 섭취한 음식물은 체내에서 분해되어 동력 자원이 연소할 때 발생하는 APT(adenosine triphosphate·고에너지인 산 결합 띠를 갖는 뉴클레오티드의 하나)가 산행할 때 필요한 에너지로 사용되는데, 먹는 양에 비해 운동량이 적으면 그게 지방으로 쌓이고 과다하게 축적되면 비만증, 고혈압, 동맥경화, 심장병, 당뇨병 등 성인병 유발 원인이 된다. 이러한 성인병을 예방해줄 수 있는 게 등산이라고 김 유영 교수는 강조했다.
김 교수는 “등산은 걷는 것의 연장선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며 “의사인 매제가 관상동맥이 반쯤 막혀 고생을 했는데 이후 10년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집에서 한 시간 이상 떨어져 있는 병원까지 걸어다니는 사이 몸무게가 80kg대에서 60kg대로 낮아지면서 병도 없어졌다”고 말한다. 김 교수는 “이렇게 건강에 좋은 걷기보다 더욱 좋은 운동이 등산”이라 강조했다.
정신적 만족감과 스트레스 해소로 우울증도 예방
김유영 교수는 등산은 트레드밀과 같은 평지에서 얻을 수 있는 운동에 비해 여러 차원 높은 운동효과를 가져온다고 말한다. 우선 경사가 있기 때문에 운동효과가 높을 수밖에 없고, 무릎을 완전히 펴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 움직이기 때문에 관절 근육을 강화시킨다는 것이다. 또한 돌길이나 경사진 바위 등을 걷다보면 장애물을 피하고 균형을 잡는 사이 순발력이 강화된다고 한다.
지난 6월 19일 부산교육대학에서 열린 부산산악포럼 주최 제2회 등산의학세미나에서 이상엽 동아대 교수(류머티스 내과)는‘일반등산의학’주제 발표를 통해 “등산을 통해 심장기능이 좋아지면 혈관순환 촉진으로 심폐기능이 향상되고, 장시간의 근육 사용으로 근지구력이 향상된다.”며 “만성피로감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고 정신적 만족감과 스트레스 감소 등을 통해 우울증 예방에도 좋다”고 강조했다.
내분비 질환인 당뇨병 예방과 치료에도 효험이 높다는 게 이 교수의 주장이다. 이 교수는 “등산을 통해 근력과 근육량이 증대하면서 혈당이 감소하는 영향을 미친다.”며 “주 2, 3회씩 꾸준히 산행을 하면 당뇨병을 예방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소화기 질환에도 큰 효과가 있다. 적절한 운동을 통해 적당한 칼로리를 소모함으로써 식욕 증대와 이로 인한 위장운동이 활발해져 역류성 식도염이나 위염, 변비 등의 증상을 호전시킬 수 있다는 것. 또한 적당한 운동이 적당한 피로를 불러일으켜 불면증이 없어져 숙면을 돕고, 이튿날 몸이 가볍고 상쾌해 신경성 위장 장애 해소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호흡기 질환 치유에 도움을 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 숲속의 맑은 공기를 마시면 우선 면역력이 증대되고, 폐의 탄성을 높여 충분한 산소를 공급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 피톤치드(Phytoncide)는 나무와 식물이 해충이나 곰팡이에 저항하려고 스스로 만들어 발산하는 휘발성 물질로 각종 감염 질환과 아토피성 피부염, 천식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피톤치드가 미생물에 대항하기 위한 항균물질인 반면 테르펜(Terpene)은 피톤치드 역할과 함께 신체의 활성을 높이고 피를 잘 돌게 하며 살균작용도 겸한다. 이러한 다양한 약리작용 외에 오감을 만족시켜 정서적인 안정을 줌으로써 스트레스를 해소시키고 암 발생률을 떨어뜨리는 데 효험이 있다는 전문의들의 의견이다.
-대전 계족산에서 열린 에코원 선양 마사이 마라톤 맨발 축제 참가자들이 즐거운 표정으로 황톳길을 걷고 있다. 맨발 산행은 발바닥 가운데 위치한 용천혈을 자극해 혈액순환이 잘되게 하고 머리를 맑게 한다고 한다. <사진 심 현종 기자>-
신장 나쁜 사람에게 과격한 산행은 금물
신장 질환에도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77 에베레스트 원정대에 팀 닥터로 참가한 바 있는 조 대행 박사(성빈센트병원 비뇨기과)는 격렬한 운동을 통해 다이어트 효과를 가져 오고 근육량을 증가시켜 비만을 예방한다고 강조한다. 여기에 신진대사가 좋아져서 혈액 순환이 활발해지고 땀을 통해 몸속에 쌓인 노폐물이 배출되는 것이다.
조 박사는 “그러나 신장이 나쁜 사람에게 지나치게 과격한 산행은 금물”이라 경고한다. 조 박사는 “산행 중에는 식수를 충분히 마실 수 없을뿐더러 염분 섭취를 위해 소금을 지나치게 먹으면 신장에 무리가 간다.”고 경고했다. 조 박사는 또한 “등산이 성욕을 증진시킨다는 얘기는 풍문에 불과하다”며 “대외적으로 인정받는 산꾼들 가운데도 비아그라를 찾는 이가 종종 찾아온다.”고 귀띔해 주었다.
한편, 이상엽 교수는 등산이 퇴행성관절염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의학적 보고도 있다고 발표했다. “반복적인 등산은 대퇴부 근육뿐 아니라 무릎과 발목 등의 근골계를 강화시키고 부드럽게 해 퇴행성관절염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것. 특히 여성은 중년이 되면서 폐경을 맞게 되고 그와 함께 몸의 변화가 일어나는데, 뼈와 관절에서 칼슘을 비롯한 영양성분이 빠져나가게 되며 그로 인해 뼈와 관절은 더욱 약해지고 퇴행성관절염이 악화된다고 한다. 이 교수는 “이러한 여성 외에 무릎이 아픈 사람들에게 등산은 조심스럽게 해야 할 운동”이라며 “무엇보다 의학적인 치료가 선행된 다음 산행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권한다.
이 교수는 관절 건강을 위해 주의해야 할 사항을 몇 가지 당부했다. 우선 자신의 발에 잘 맞는 등산화를 신도록 하고 보행 시에는 신발 바닥이 전체적으로 바닥에 닿도록 해야 한다. 또한 경사에서 구부정하게 걷는 자세는 무릎관절에 무리를 많이 주므로 경사면에 따라 상체를 약간 기울이는 것이 좋다. 무릎을 약간 굽히거나 발목을 이용해 관절의 부담을 분산시키도록 하고, 경사에 관계없이 스틱을 이용해 관절의 부담을 분산시키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이상엽 교수는 “무릎이 아프지 않더라도 무릎 보호대를 착용해 무릎에 부담을 줄여주도록 하고, 양말은 두꺼운 게 좋고 무릎보호용 깔창을 사용하는 것도 좋다”며, “또한 산행 전후 맨손체조와 스트레칭을 하고 무리한 산행 후에는 온찜질로 근육과 관절의 긴장을 풀어주는 게 좋다”고 말했다.
등산이 관절 강화에 도움이 된다는 면에서는 한의학에서도 같은 의견을 내놓는다. 2000년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하는 등 여러 차례 고산 등반을 경험한 바 있는 박 헌주 한의원장(전남대 OB)은 “무릎뿐 아니라 허리가 아프더라도 육체적인 운동을 멈추면 그 순간부터 더 약해질 수밖에 없다”며 “조금씩 걷다가 어느 정도 자신이 생길 때 산을 오르면 주변 근육이 더욱 단련되어 약해진 관절 부위가 강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현대인의 병은 과잉섭취에 의해 일어나는 게 대부분”이라며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는 게 가장 바람직하며, 그 운동 환경으로 산이 가장 좋은 곳이다”고 말했다.
-북한산 인수리지를 등반하는 등산인들. 암릉산행은 건강뿐 아니라 자신감을 북돋아 준다고 의사들은 말한다.<사진 허 재성 기자>-
극한의 스포츠 통해 인내심 키우고 인간관계 향상시켜
등산은 육체적으로 큰 도움을 주지만 정신 건강 면에서 끼치는 영향이 더욱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기도 하다. 정신과 전문의인 한오수 박사(65·전 현대아산병원 교수)는 “등산은 다른 운동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황홀경과 정신적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스포츠”라 말한다. 한 박사는 “자연 자체가 정화작용을 한다”며 “우리 인간은 그러한 자연을 끊임없이 추구하는데,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자연이 바로 산”이라 강조했다.
한 박사는 “헬스는 기계적인 움직임에 불과하지만 등산은 운동과 더불어 즐거움을 주고, 등산을 통해 형성되는 엔도르핀이 무슨 일이든 즐겁게 할 수 있게 한다”며 “또한 집중하여 고도의 위기감을 벗어나는 순간 만족감을 불러일으키는데 이것 역시 다른 운동에서는 느끼기 힘든 것”이라 말한다.
킬리만자로와 엘브루즈 등 해외 고산 트레킹 경험이 많은 한 오수 박사는 “현대의 사회인들은 자연과 점점 멀어지고 있는데 산을 오르노라면 대자연 속에서 숨 쉬고 해방감을 찾을 수 있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스포츠”라며 “특히 젊은이들에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박사는 또한 “목숨을 걸고 하는 스포츠는 등반이 유일할 것”이라며 “그런 극한의 스포츠를 통해 인내심도 키우고 그로 인해 인간관계도 좋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오수 박사는 “고산에서 힘든 상황을 겪으면 다시는 안 가겠다고 다짐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으면 또 가게 된다”며 “여인들이 아이를 낳을 때 엄청난 고통을 겪고 나면 다신 아이를 낳지 않겠다 말해 놓고 또 아이를 낳는 것처럼 힘든 과정이 반복되는 산을 끊임없이 오르려는 욕구는 인간의 본능”이라 강조했다.
김 유영 교수 또한 “힘든 트레킹이나 트레킹 피크 등반을 무사히 마치면 그 성취감이 6개월 이상 가는 것 같다”며 “등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고된 과정을 견디어냈다는 만족감 때문인 것도 같다”고 말한다.
1982년 마칼루 학술원정대에 참가한 이후 트레킹뿐 아니라 의료봉사와 문화교류를 위해 거의 매년 네팔 히말라야를 찾고 있는 이 근후 박사(정신과)는 등산을 수도(修道)의 경지로 해석했다. 이 박사는 “등산은 처음 시작할 당시에는 육체적인 면이 강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산’을 느끼게 되고 이것이 정신적인 면으로 발전한다.”고 말했다.
이 근후 박사는 “인간에게는 삶의 본능과 함께 죽음의 본능이 존재 한다”며 “등산은 자동 평형 능력을 움직여 가장 좋은 상태를 유지하려는 능력을 키워주는 운동”이라며 “일반적으로 산에 다녀와서 스트레스 확 풀고 왔다는 표현을 하는데, 이는 몸에 나쁜 파장이 사라지고 지극히 안정적인 상태를 되찾았기 때문이며, 이런 상태가 계속 쌓이다 보면 득도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라 말했다.
이 박사는 세계 최초의 14개 거봉 완등자인 이탈리아의 라인홀트 메스너를 예로 들며, “등산은 수도승 같은 정신적인 세계를 추구하는 스포츠”라고 높이 평가했다.
이 박사는 라인홀트 메스너의 저서 <나는 살아서 돌아왔다>를 읽고, 첫 번째 등정한 고봉인 낭가파르바트 등반에서는 동생을 잃고도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오만한 태도를 보여 왔던 매스너가 고봉을 하나하나 넘는 사이 완숙하고 겸손한 수도자로 변해 가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한다. 이 박사는 “환각 등 고산에서 병리적인 체험을 겪는 사이 인격이 퇴적층 쌓이듯 한 층 한 층 쌓여 결국 수도승과 같은 경지에 이른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등산을 세 단계로 표현했다. ‘오로지 목표에만 집착하는 만용의 단계’에서 ‘산등성이에 올라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단계’에 이른 다음 마지막으로 ‘좌절을 극복하고 수도승의 단계’에 올라선다고 말한다. 이 때 성공이냐 실패냐 하는 식의 이분법적인 자세로 등산에 접하면 절대로 세 번째 단계까지 올라설 수 없다고 이 박사는 단언한다. 그는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를 예로 들며, “해발 8,848m 고지를 향해 오르다가 8,400m 중턱에서 되돌아섰을 때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거기까지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박사는 “등산을 통해 건강에 도움을 얻으려면 늘보 스포츠로 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박사는 “요즘 사람들은 주변 환경이 너무 편리해 불편한 것은 견디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며 “이러한 것을 이겨낼 수 있는 인내력을 키워주는 운동이 또한 등산”이라 말한다.
이 근후 박사는 “에베레스트를 오른 사람은 한 명 한 명 다 초등자”라는 원로 산악인의 말을 인용하며 “자신의 힘이 달려 도중에 내려섰다고 그것을 실패나 좌절로 여겨서는 안 되며, 그래야 그때그때 성공했다는 만족감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 글 한 필석 부장
<월간 산 2011년 1월 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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