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아, 대청봉!
아직 대청봉에 못 올라간 사람은 지금 오르라. 설악에 케이블카가 생기면 그날로 대청봉은 없으니까. 천추의 한이 따로 없다.
대청봉은 설악산의 대명사다. 높이는 1,708m밖에 되지 않지만 그 의미는 딴 데 있다. 설악 대청의 상징이야말로 크다. 고고하며, 극기의 표상이다. 접근을 불허하지는 않으나 쉽게 오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대청을 가슴에 품고 있으리라고 본다.
오래 전에 나는 젊은 산 친구들과 대관령에서 대청까지 7박 8일로 간 적이 있다. 백두대간을 모를 때 이야기다. 설악 정상에 도착한 날이 마침 8·15 광복절이었는데, 대청봉 푯말을 둘러싼 수백의 인파가 느닷없이 애국가를 부르고 만세 삼창까지 외쳤다. 광복절이기는 했지만 그들에게는 남다른 감격 감동이 북받쳤으리라. 이러한 감정은 더 높은 백록담이나 천왕봉에서보다 대청봉이 한층 강한 것 같다. 그 까닭은 어디 있을까.
수많은 해외 원정대는 반드시 설악산에서 훈련한다. 높이는 한라와 지리 다음에 가지만 산악인들 머리에는 뭐니 뭐니 해도 설악이다. 설악(雪岳)이라는 이름부터가 그렇지만 실은 그 산세(山勢)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대청의 자랑과 특징은 주위의 넓은 공간을 홀로 지배하는 데 있다. 멀리 동해와 울산암을, 가까이는 공룡능선과 용아장성, 그 광대하고 웅장하며 심오한 천연자연성은 대청봉 아니고서는 이렇게 한눈에 그대로 바라볼 곳이 없다. 대청봉은 고고함 바로 그것의 상징이다.
흔히 우리나라 국토의 70%가 산악지대라고 하지만, 높이가 2,000m도 안 되는 그야말로 저산지대가 대한민국의 산세다. 그러나 이러한 자연조건 속에서 우리는 출발해 오늘날 세계무대에 섰다. 알피니즘의 시작이 몽블랑에서라면 우리는 설악산에서 시작한 셈이다. 설악산의 등반 史는 한국 등반사의 압축이나 다름없다. 지난날 유능한 젊은이들이 수없이 간 곳도 설악이다.
30여 년 전 일이 생각난다. 에베레스트에서 돌아오며 네팔 카트만두에서 많은 외국인들과 만났다. 그때 그들은 우리의 에베레스트 등정에 놀라, 한국에는 높은 산이 있는가 물었다. 2,000m가 안된다니까 ‘그것은 Mountain이 아니고 Hill’이라며, 놀랐다기보다 의아한 표정들이었다. 그때 나는 산은 낮아도 계절 따라 강풍과 폭설 그리고 혹한이 심상치 않은 자연조건이라고 맞섰다.
우리는 6·25로 역사의 고도 개성을 잃었지만 금강산보다 높은 설악을 얻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 봉우리 하나로 한국의 젊은이들의 기상이 얼마나 자랐는지 새삼 이야기할 것도 없다. 이렇게 해서 생긴 설악산은 우리에게 당시 미지의 세계였다. 산악계의 선배격인 모씨는 천불동계곡 초등을 자기 산력에 당당히 넣고 있다. 웃을 일이 아니다. 요즘처럼 철제계단이 없던 그 시절, 격류를 헤치고 그 협곡을 뚫고 올라갔다는 것은 충분히 모험이고 개척이었으리라. 또한 12선녀탕으로 올라붙는 서북 주릉이며, 이름도 용아장성이라는 데를 처음 돌파한 일들은 능히 한국 등반의 역사를 장식하고도 남을 성취라고 본다.
엄동설한 설악에서는 산악인들의 시련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적설기 자연의 위협을 산사람들은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그래서 설악은 우리에게 한없는 매력이다. 사람은 단순한 안락보다 짜릿한 시련을 좋아하며, 그것을 통해 얻는 성취감을 더욱 중요히 여긴다. 인간이 강해지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이상한 풍조가 흐르고 있다. 학교에서 무조건 체벌을 없애고, 군대의 기합도 절대 금물로 되어 있다. 겉보기엔 이상적인 사회 같지만 어딘가 불안한 느낌이 든다.
사람들이 대청봉에 오르려는 것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고 어디까지나 자발적이다. 고생을 알면서 나서려는 것이다. 이것은 삶의 지혜요 방법이며 아주 값진 일이다. 그런데 그런 값지고 지혜로운 자발적 행위를 방해하는 발상과 추진세력이 있다. 대청봉 중심으로 사방에서 공중 삭도를 놓으려고 하는 것이다. 국민생활에 도움을 주련다고 하겠지만 국민건강을 약화시키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사람은 문명의 혜택 속에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병들고 있다. 이것은 현대문명의 운명인 셈이며, 문명과 문화 사이에 아포리아가 있다. 굳이 소위 전문가나 학자의 말을 빌릴 것도 없다.
대청봉 케이블카가 끼칠 정신적 해악의 크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열정과 의지이며, 이것은 오직 강건한 정신과 육체의 소산이다. 그런데 이러한 强健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것은 어디서 얻을 것인가.
설악은 그냥 산괴가 아니며 대청 또한 그냥 정상이 아니다. 그곳은 체벌 없이 가르치는 학교며, 기합 없이 단련하는 군대다. 누구나 자유로이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인생의 도량의 Symbol이다. 거기에는 가혹과 준엄, 감격과 희망과 낭만이 있다. 문명으로 얻을 수 없는 천연자연의 세계다.
오늘날 자연이 절대적 재산이요,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임을 누구나 안다. 그런데 국토의 70%가 산악지대라는 우리 자연이 실은 창세기 이래의 모습으로 남아있는 데가 거의 없다. 이유야 어떻든 인공의 침윤으로 상처투성이다. 곳곳에 골프장과 콘도, 펜션과 각종 시설이 들어서고 있다. 국립공원이라는 데는 날로 유원지가 되고 제구실을 못 한다. 미국의 국립공원에는 곰 같은 맹수가 그대로 살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있던 산양도 사라졌다.
설악 대청은 바로 등산의 목표며 무대다. 세계 최강의 등산가로 히말라야 8,000m급 거봉들을 최초로 완등한 라인홀트 메스너가 최근에 ‘등산은 서구 것이 아니고 남성들의 것도 아니다. 그것은 가능성이다’고 했다. 설악산 대청봉은 우리 누구나 자기의 가능성을 시험하고 확인하며, 그러므로 저마다 자기 인생에 희망과 자신을 가지게 하는 곳이다. 거기 오르지 못한 사람은 오른 사람 앞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다. 발언권이 없을 때 사람은 생의 의욕을 잃고 뒷전으로 물러난다. 이것이 인생이다.
그 옛날 일본 알프스에 케이블카를 놓을 것인가 말 것인가 논쟁이 벌어진 일이 있다. 찬성 쪽은 “그 좋은 자연을 약한 남녀노소들도 쉽게 즐기도록 해줘야 한다.”는 것이고, 반대쪽은 “외국에서는 ‘에베레스트를 산소 도움으로 오른다면 그 등산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하고 있는데, 고작 3,000m의 일본 알프스를 자기발로 걷지 않고 그냥 오르내리겠다는 그 정신과 패기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는가?”였다.
지금 우리는 물질문명과 대자연 사이에 샌드위치가 되어 고민하고 있다. 여기 길은 오직 하나, 인생의 주인공인 각자가 결단해서 앞길을 헤쳐 나가는 것이다. 설악의 대청으로 향한 끊임없는 대열은 그들의 행진이다. 이렇게 묵묵히 이어지는 숭고한 대열을 누가 끊을 것인가. 만일 여기 이상한 발상으로 그들의 길을 막는 날, 그들의 실의와 좌절은 누가 무엇으로 보상할 것인가.
근 서해에서 벌어진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바로 국력이며 국민의 강력한 투지다. 그런데 그것은 학교나 군대에서만 키우는 것이 아니다. 우리 생활의 바탕에 그 의지가 깔려 있어야 한다.
나는 언제나 한반도 남단 금정산을 생각한다. 한 젊은 여성이 정월 첫날 이 산정에서 홀로 떠나 북녘을 향해 산줄기를 타고 76일간 걸어, 휴전선 향로봉에 도달하고, <하얀 능선에 서면>이라는 책까지 썼다. 1984년의 일이다. 그 뒤 그 길은 누가 갔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백두대간 종주라는 새로운 과제가 산악 界에 나온 것이 그 뒤였으니 그녀의 당시 태백산맥 종주는 선구적 역할을 한 셈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언제나 정열과 의지다. 설악의 대청봉은 그러한 Symbol로 우리 앞에 높이 서 있다.
월간 산 1월호에서 <글 김영도 77한국 에베레스트 원정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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