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智異山) -묘향대 (妙香臺)]******
묘향대는 행정구역은 전북 남원시 산내면 부운리이다. 지리산의 큰 골짜기 뱀사골을 모두 발 아래에 둔 장대한 풍광을 간직한 절 집 묘향대(1500m)는 남한에서 현존하는 사찰 중 가장 높은 곳이다. (cf설악 봉정암 1224m)신라 때 창건돼 1천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대형사찰인 화엄사의 말사에 해당되며 지리산 반야봉 신록이 감춰둔 한국불교의 마지막 전설이 묘향대이다.
묘향대(妙香臺)는 문수를 한역을 하면 묘수(妙首), 묘덕(妙德), 묘길상(妙吉祥) 등이 된다. 다시 말하면 문수의 체(體)는 바로 묘유(妙有)라는 것으로 향상 변함이 없는 자성(自性)자리를 가리키는 것이니 이 묘유를 묘향(妙香)이라 일컬은 것이다. ”
지리산 10대(?)의 공통점은 커다란 바위벽이 있고 그 아래에는 석간수가 흐르고 있으며 문수대, 우번대.. 등과 함께 묘향대는 현존하는 암자와 수도하는 분이 머물고 있다. 수도처답게 지리산 깊숙한 곳에 위치하며 氣를 느낄 수 있고 영험한 느낌이 든다. 주변에 반달곰이 서식하고 있다.
묘향대는 수백년 동안 토굴로 이어져 왔다. 시작은 정확히 언제인지 모른다. 다만 조선시대에도 묘향대에 관한 얘기가 회자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모습으로 증축한 것은 70년대 초반이다. 화엄사를 새롭게 일으킨 도광 스님이 주변의 도움을 얻어 토굴에서 절 집의 모습으로 가꾸었다. 근처에 금강굴이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 또한 스님들에게는 유명한 수행처이다.
지도에는 묘향대의 위치가 반야봉의 동쪽이자 뱀사골의 막차계곡 상류에 표기되어 있으나, 현재의 묘향대 위치는 반야봉에서 중봉 무덤옆 구상나무 부근에 내려가는 길에 있다.
******[지리산 10대]*******
『“대(臺)”라 함은 작게는 산사에 모셔진 불상의 좌대에서부터 크게는 스님들이 산속에서 정진 수행하는 장소를 말하며, 넓은 의미로서는 지리산의 만복대나 영신대, 종석대 그리고 오대산의 다섯 대처럼 그 산의 왕성한 기운이 응집하여 수행하기 좋은 장소이거나, 나아가서는 큰 깨달음을 얻어 중생을 제도할 수 있는 능력의 기운이 깃든 곳들을 의미한다.』(天上祿/두류산인)
대체로 전망이 좋고, 풍수지리상으로 보아 명당에 해당하는 곳이며, 뒤에는 깍아지른 절벽이거나 암벽이 있고 아래에는 석간수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 공통점이다.
지리산에는 모두 33臺가 있으며 옛부터 이름난 수도처로 - 문수대(文殊臺). 종석대(鐘石臺). 묘향대(妙香臺). 서산대(西山臺). 무착대(無着臺). 향운대(香雲臺). 문창대(文昌臺). 영신대(靈神臺). 향적대(香積臺). 금강대(金剛臺)의 10대(十臺)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최화수님의 "지리산 365일"에는 반야봉 7대, 천왕봉 5대가 소개되어 있다. 지리산에서 10대의 공통점은 모두 뒤에는 암벽이 있고, 그 아래에는 석간수가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지리산 10대는 문헌마다 조금씩 다르고 사람마다 그 위치가 다른 것이 있기도 하다.그래서 반야봉 7대+ 천황봉5대=12대가 된다.
<반야봉 7대>
1)[문수대] 불교에서 문수보살(文殊菩薩)은 반야경을 편찬하신 분으로 지혜의 완성을 뜻하는 화신이다. 따라서 이러한 지혜를 구할 수있는 자리라함은 예사롭지 않을 수 없다. 노고단 정상부근에 있는 군사시설에서 우측 철조망을 따라 피아골 방향으로 나아가면 나오는 삼거리에서 좌측 바로 위에 단아하고 정갈한 건물로 서있다. 직진하는 길은 왕시루봉과 돼지평전 가는 길이다.
2)[묘향대] 반야봉 정수리에서 묘시방향에 있다는 뜻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암자이다. 예전엔 토굴이었으나 화엄사 불사를 완성한 도광스님이 절집의 모습을 갖춘 한국 불교의 마지막 전설로 불리는 곳이다. 주능선에서는 삼도봉 옆 소금장수무덤 부근에서 반야봉 올라가기전 표지판 뒤쪽으로 하나가 있고, 반야봉에서는 중봉 헬리포트 무덤 옆에 구상나무가 있는데 자세히 보면 내려가는 길이 보인다. 길이 완전하지 않으니 조심스럽게 내려가야 한다. 전설에 의하면 금강대가 제일의 수행지였다 전해지나 찾을 길이 없는 지금은 이곳을 으뜸으로 치고 있다.
3)[종석대] 우번대, 관음대라고도 한다.노고단에서 성삼재 방향으로 조금 가다보면 조그만 봉우리를 끼고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갈림길의 좌측길로 가면 있다.성삼재 뒤쪽의 바위봉우리이다. 백두대간상에 있으며 노고단에서 보면 종모양을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과 바위에 부딪치는 바람소리가 돌종을 울리는 소리와 같다해서 붙여졌다는 설이 있으며 혹자는 관음대라고도 한다. 우번암을 찾아가는 길은 정상에서 성삼재 방향으로 2~3분 나아가면 조그만 봉우리가 하나 있는데 그곳에서 남쪽방향으로 길이 있다. 그 길로 조금 내려가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우번암의 붉은색 지붕이 보인다. 그곳에서 좌측길로 내려서면 된다. 우번대사가 깨쳤다는 곳이다.
4)[만복대] “만萬”이란 현대사회처럼 수의 개념이 아니라 모두, 전부, 무한의 개념이다. 따라서 만복이란 이 세상의 모든 복, 즉 복의 근원을 의미하고 그러한 장소라 하면 누구라도 복을 받을 수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산모양 역시 종석대나, 영신대처럼 형이상학적인 모습이 아니라 넓고 펑퍼짐하며, 정상 바로 아래 샘이 있다. 구도의 길을 찾는 수도처는 아직 찾아내지 못하였으나 아마도 지어진 이름처럼 모든 이가 복받을 수 있는 너른 터는 아닐까. 오르는 길은 정령치나 성삼재, 그리고 상위마을에서 묘봉치나 다름재를 거쳐 오를 수 있다.
5)[금강대] 지리산 최고의 수행처로 뱀사골 어디쯤에 있다는 설이 있었으나 김일손의 기록에 향적사 앞에 우뚝한 바위가 있는데, 올라 조망하면 흰구름이 감싸고 있는 기이한 무수한 봉우리들이 보였다고 적고 있다.뱀사골 어디쯤?
6)[무착대] 집착이 없다는 뜻이니 번뇌를 털기 위한 수행의 기본 조건이다. 지리산의 봉우리중 유일하게 장등이라는 이름을 하고 있는 불무장등 아래에 있다. 삼도봉에서 불무장등으로 30분 정도 나아가면 불무장등을 오르는 바로 앞에 갈림길이 있다. 여기서 우측길로 2~30분 정도 나아가다 우측의 희미한 족적을 따라 10분 정도 올라서야 한다. 입구 삼거리에서 직진마을로 내려오는 길이 있다.
7)[서산대] 피아골산장 뒤편 지능상에 있다. 산장뒤 비탈길을 1시간가량 올라가면 너덜강 지대같은 바위길이 있는 지점에서 좌측으로 비스듬히 5분여 나아가면 바위절벽이 있는 서산대가 나온다. 주능선상에서는 돼지평전 첫 번째 헬기장에서 내려오는 길이 있으나 인적이 희미하여 상당한 주의를 기울이며 내려서야 한다.
<천왕봉 5대 >
1)[향적대] 향기가 쌓여있다는 뜻이니 그 산의 기운이 모여있는 곳이다. 장터목 산회샘에서 좌측으로 10여분 들어간 곳에 있다는 설과 제석봉을 지나 통천문을 지나기전 오른쪽 아래에 있다는 설이 있다. 고서에 가장 많이 나오는 장소로 이륙의 지리산기, 김종직의 유두류록, 남효온의 지리산일과, 김일손의 두류기행록, 양대박의 두류산기행록, 박여량의 두류산일록, 유몽인의 유두류산록, 김선신의 두류전지 등에 보이며 천왕봉을 오르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장소로 활용되었다.장터목 산회샘에서 좌측으로 10분정도 들어가면 있다.
2)[문창대] 법계사 남쪽의 암봉과 법계사 서쪽 헬기장옆.문수보살의 지혜가 햇살처럼 찬란하다는 뜻이니 곧 지혜를 구함이다. 예전에는 법계사 남쪽 2km지점의 암봉으로 알고 있었으나 1979년 진주산악회 학술조사반에서 법계사 서쪽 헬기장 옆으로 재정립하였다. 근거로 바위에 “고운최선생장리지소”(孤雲崔先生杖履之所), 즉 고운 최치원선생의 지팡이와 짚신을 놓아두었던 장소라는 바위암각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3)[영신대] 신령스런 산신이 계신 곳이란 뜻으로 예로부터 지리산에서 기운이 가장 왕성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들머리는 벽소령방향에서는 영신대를 오르는 나무계단을 오르기전 우측으로 길이 있다.(등산로아님표지) 그곳으로 10여미터 들어가면 철조망이 쳐져있다. 바위비탈을 지나 내려가면 영신대 좌측방향으로 나온다. 세석방향에서는 영신대 헬기장 정중앙에서 우측방향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경사가 완만하며 10여분후면 영신대에 도착할 수 있다. 영신대는 물이 좋고 가끔씩 무당들이 신내림을 받기위해 드나들어 신상과 재단이 정비되어 있고 가재도구들이 바위틈 곳곳에 숨겨져 있다
4)[소년대] 영랑대, 소년대(永郞臺, 少年臺, 1,760m) - 하봉을 지나 무덤가기전 바위군의 어느 지점을 말하는 듯하다. 고서에는 푸른 절벽이 만 길이나 되며, 영랑참에 있는 것으로 기록된 것이 많다. 김종직의 유두류록과 유몽인의 유두류산록에는 ‘소년’이란 “영랑의 무리를 일컫는 듯하다”고 기록하고 특히 유몽인은 ‘천왕봉이 장로이고 이곳은 장노를 받들고 있는 소년처럼 생겼기 때문인 것 같다‘는 의견을 곁들였다. 다만 남효온의 지리산일과에는 빈발암(영신사 부근)을 가는 길에 “향적사를 떠나 소년대에 올랐다. 솜대를 뚫고 계족봉을 지나 30리를 걸어 빈발암에 닿았다”라고 적고 있다.
5)[향운대] 구름향기란 뜻이니 즉 부처님의 말씀을 뜻한다. 광점동 어름터 독가에서 계곡을 건너 우측 능선을 붙어 2시간가량을 올라야 한다. 주능선에서는 국골사거리에서 직진하면 말봉을 올라서게 되고 이곳에서 능선상으로 두 번째 보조자일을 잡고 내려서는 곳을 지난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20여분 나아가면 있다.
9.0km 150분[반야 중봉](1732m)
커다란 헬기장과 연안김씨묘가 있다. 좌향 간판이 보이는쪽은 달궁과 심마니 능선을 타고 반선쪽으로 향하는 길이고 묘향대로 가는길은 우측길이다. 점심식사하고 심마니 능선과 묘향대를 두고 고민하다가 우향 묘향대 길로 접어 내려가니 곧 우측 갈림길(1)을 지나 바위와 여러 개의 베어진 나무 사이를 통과하고 다시 우측 갈림길(2)을 지나 10여분 후 묘향대 지붕이 보이면서 묘향대(1500m)로 내려간다 [0.8km][40분]
9.8km 190분 [묘향대](1500m)
“20여 미터 넘는 절벽 밑에 자리한 암자... 그 절벽아래 넓은 공터를 가진 묘향대 ! 암자라고 하기엔 절 분위기는 아니고 그저 허름한 집 하나 있다.그러나 절 뒤쪽 바위 바위아래 수량 많은 석간수 샘물은 최고급이다.물 한잔하고 전망을 볼수없는 날씨를 아쉬어 하면서 증명사진 남기고 묘향대에서 20여m Back하여 우향4~5m 진행 갈림길에서 좌측 오름길 1~2m 올라 능선을 넘어서 출입금지 금줄과 표지기 몇장 붙어있는 금줄을 넘는다. 허리길이 그런대로 잘 발달 되어있다.급경사 내림길도 내려 서고 너덜길을 끝없이 진행한다.간간히 붙어 있는 선답자들의 표지기가 안내자가 되어준다.물없는 계곡 만난다. 계곡 따라 내려가는 희미한 등로길을 진행하면 계곡너덜을 이리저리 건너고 피하고 돌아가면서 가는 동안 아담하고 예쁜 폭포를 여러 차례 만날 수 있어 초겨울 기대도 못했던 이끼폭포의 매력을 느끼면서 내려간다.[2.0km][90분]
11.8km 280분[이끼폭포]
간간이 이리저리 물줄기 대신 계곡 돌덩이를 건너기도 하고 미끄러운 돌로 인해 조심스럽게 내려가기도 한다. 계곡 좌측 또는 우측으로 끝없이 다람쥐길이 이어진다.약 2시간의 악전 고투 끝에 뱀사골 본류와 합수되자 철교가 보인다. km가 의미가 없는 너덜길과 계곡길의 끝이 보인다. 고생 끝 행복 시작이다.[1.5km][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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