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추억 - 하나.
대학 졸업하기 전 얘기 하나가 가끔 생각나서 오늘 기억해본다. 1982년인지 1983년인지 기억이 희미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는 신군부 세력의 우두머리인 전두환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 되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을 때다. 무시무시한 시절이었고 민주화투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어느 정도 잠잠해질 무렵이었다.
그 당시 지금 결혼한 집사람과 결혼 전 무슨 요일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도 나지 않지만 하여튼 데이트하기 위해 맑은 날 경주 불국사에 들렀는데, 그날따라 이상하게도 관광객도 별로 보이지 않고 정말로 조용한 날이었다. 집사람과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매표소에서 표를 끊어 불국사 다보탑 석가탑을 지나 대웅전이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청운교 백운교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계단 중간쯤 올라 갈 때 위에서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고개를 들고 위로 쳐다봤다. 그런데 제일 앞쪽에서 전두환 대통령과 이순자 여사가 경호원들과 함께 우러러 내려오고 있었다. 옆으로 비켜서려고 할 때 전두환 대통령이 ‘반갑습니다.’하면서 손을 내밀었다. 순간적으로 나는 손을 내밀지 않고 옆으로 비켜섰다.
그 순간 나는 정말 전두환 대통령임을 알아보고서는 솔직히 악수하기 싫었다. 5.18 군사 쿠테타의 주인공인 전두환 대통령은 그 당시 대학생들에겐 공공의 적이었다. 그래서 말없이 비켜섰다. 그런데 경호원들이 ‘괜찮습니다. 악수하세요. 대통령입니다.‘라고 거듭 말했지만 나는 묵묵무답으로 비켜서서 계단을 올라갔다.
5분쯤 지나고서 머리가 멍하니 비워졌다. 이제 죽었구나 싶은 생각에 식은땀이 나고 소름이 확 돋을 것 같았다. 집사람과 아무 말도 없이 그냥 대웅전과 무설전을 지나 관음전 비로전으로 해서 밖으로 빨리 나와 버렸다.
다행히도 그 순간부터 그 후 나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전두환 대통령이 악수하자고 손을 내밀었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손을 내밀지 않았음에도 전두환 대통령이 대소롭지 않게 넘어 가준 덕분일까? 보통 사람들도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을 행동인데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참 그릇이 적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또 하나 이상한 것은 그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있는 곳에 내가 어떻게 아무 제지도 없이 대통령 바로 앞에까지 갈 수 있었는지 그것도 궁금했다. 경호원들은 왜 나를 통제 하지 않았을까? 경호망이 뚫린 것이었을까? 아님 나하고 집사람하고 데이트 하는 사람으로 인지하고 계획적으로 자연스럽게 엑스트라로 연출되었는 것일까?
집사람은 지금도 한 번씩 얘기한다. ‘당신 그 때 왜 대통령이 악수 하자고 손을 내미는데도 악수 하지 않았는냐고? 잡혀가서 죽었을 수도 있었는데.........’
2010년 12월 24일 오후 15시 30분.
무지 추운 X-Mas 이브 날 사무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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