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산행기 1./설악산

꿈의 산행코스! - 용아장성陵 산행!

산에나갈련다 2014. 3. 26. 17:25

 

 

꿈의 산행코스! - 용아장성陵 산행!

 

 

 

1. 출발일시 : 2007년 10월 19일. 대구은행 범어동 지점 앞.

2. 산행일시 : 2007년 10월 19일. 02시 15분. 설악산 오색약수 앞.

3. 산행코스 : 오색-대청봉-소청대피소-봉정암-사리탑 앞-용아陵 진행-개구멍 도착-옥녀봉-수렴동계곡-

                   백담사 계곡-백담사-용대리

4. 총 산행시간 : 14시간 <용아장성 산행시간 : 7시간

 

5. 산행개요 :

 

단풍의 계절! 설악의 모든 계곡과 능선에도 붉고 노란빛의 단풍이 물들고, 그 곱디고운 빛깔에 짙푸른 소와 담, 산행인들의 환한 얼굴과 웃음소리도 단풍으로 물든다. 사람과 산이 너나없이 붉어 하나 되는 즐거움을 만끽하기 위해 가을만 되면 산행인들의 발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단풍을 즐기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 능선이다. 그중에서 설악산 용아장성릉은 릿지등반과 내설악의 파노라마를 즐기며 산행하는 데 그만인 코스다. 

 

용아장성은 산객이라면 누구나 한 번 가보고 싶어 하는 곳! 설악산의 많은 산행코스 중에서 용아장성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수백 길 위 암봉을 스릴 있게 오르내리는 재미와 용아장성에서만 볼 수 있는 내설악의 뛰어난 조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용아장성은 내설악의 봉정암 사리탑에서 수렴동 산장까지 이어지는 긴 암릉(도상거리로 약 5km)이다. 내설악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용아장성릉은 용의 어금니 같은 암릉이 성처럼 길게 솟아 있어 지어진 이름이다. 이름에 걸맞게 용아장성릉은 크고 작은 암봉 20여개가 송곳니처럼 솟아 있다. 암릉 좌우로 가야동계곡과 수렴동계곡, 공룡능선, 서북릉에 솟은 귀떼기청봉과 그 곳에서 발원하는 수많은 골짜기들을 마주하며 걷는 길은 내설악 산행의 백미다. 크고 작은 암봉들을 오르내리며 가는 암릉길과 까마득한 벼랑 아래 계곡이 몸을 뒤틀며 만든 소와 담을 원근감 있게 즐기는 것은 설악산 산행의 또 다른 묘미를 더해 준다. 

 

6. 山行記 

 

설악산 은 山中 美人이다.

 

산의 얼굴은 봉우리 峰이다. 산의 몸매는 능선이다.

산의 건강은 계곡이다. 산의 피부는 숲이다.

설악의 매력은 바로여기에서 나온다.

지리산과는 전혀 상반된 매력이다

설악을 처음 알고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설악은 그런 매력을 조금도 잃지 않고 있다.

오히려 알면 알수록 그동안 보지 못했던 더 많은 모르는 것들을 찾아낸다.

오늘도 설악이 나를 부르고 있다.

그것은 절세미녀의 은밀한 유혹과도 같은 것........

마음은 벌써 아름다운 여인 설악을 만나러 가는 꿈으로 부풀어 오른다.

 

국내의 많은 유명산을 오르고 백두대간을 종주하고 지리산 설악산 비탐방로를 산행하면서도 늘 남들이 오르지 못한 곳을 가고자하는 마음은 언제나 기대에 차있다. 내설악의 심장부인 공룡능선과 화채능선, 천화대, 상투바위골, 큰귀떼기골, 곡백운곡, 독주골........ 그리고 용아장성에 오르고자하는 꿈은 산을 타는 아마추어에게는 간절한 소망이다. 공룡능선과 서북능선은 가끔씩 올라 내설악의 진면목을 조금은 접할 수 있지만, 용아장성과 화채능선은 위험지역과 자연 휴식년제라는 출입 통제로 마음대로 오를 수가 없다. 

 

그 중에서도 언젠가 한 번은 산행해야 할 꿈의 코스! 용아장성 코스를 다시 한 번 무박종주로 산행하게 된 것이다.

 

 

10월 19일(금) 21;05

 

대구 범어로터리 대구은행을 출발한 버스는 밤길을 달려 10월 20일(토) 02:00경 오색 등산로 입구에 도착한다.

잠을 버스에서 새우잠으로 자고 새벽에 야간산행을 시작하는 무박산행은 피곤하기 그지없다. 야영의 즐거움도 없고 여유로운 휴식도 없다. 오로지 그곳에 가고 싶다는 일념만이 무박산행의 고단함을 극복할 수 있다. 

 

탐방안내소 입구에서 간단한 준비운동과 단체사진을 한 컷 담고는 어둠속 대청을 향한 숲길로 진입한다. 산행이 아닌 고난의 행군을 시작한다. 토요일이나 그래도 각지에서 몰려든 인파로 랜턴불빛이 줄을 잇는다. 칠 흙 같은 어둠속 숲길을 한 번도 쉬지 않고 꾸준히 올라 생각보다 이른 04:30분경 대청봉에 오른다. 그런데 갑자기 엄청나게 차가운 눈바람 광풍이 불어 닥친다. 손끝이 얼어붙는 것 같고, 다리가 마비되는 것 같고, 눈이 얼어붙어 앞이 보이지 않는다.

 

대청봉 정상석만 힐끗 한 번 쳐다보고는 서둘러 중청으로 내려선다. 세차게 몰아치는 바람과 추위로 도저히 걸을 수가 없다. 이를 악물고 천천히 조금씩 발을 한 발 한발 움직여 걸을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추위에 떨었는지 공포가 엄습했다. 이때까지 어떤 겨울산행에서도 이런 세찬 바람과 강추위를 이렇게 느껴본 적이 없었다. 

 

무전기로 송 대장에게 대청봉 통과를 알리고 중청대피소를 들어갔다. 모두들 엄청난 추위에 놀란 모습들이었다. 30여분 동안 몸을 조금 녹이면서 뒤 회원들이 오기를 기다리다 또다시 소청대피소를 향해 걷는다. 그래도 새벽 날씨는 매섭게 추웠다. 어둠속으로 걷기를 30여분. 소청대피소에 도착한다.  

 

 

5시 30분경이다.

나는 컵라면을 하나 시켜서 아침식사를 간단히 하고는 대피소 안으로 들어갔다. 용아장성을 산행할 회원 분들이 한명씩 들어오고 있었다. 모두들 추위에 바짝 떨고 긴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걱정하고 있었다. 오늘 용아장성을 산행할 수 있을지를.......

 

여명이 서서히 밝아오고 송 대장이 들어온다. 산행 가능 여부는 30여분 후에 결정하자고 결론을 내리고 날이 밝기만을 기다린다. 

 

거기 용아장성이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더 이상 아무 것도 필요 없다. 

 

그곳에 다시 가고 싶다. 

 

멀리 병풍처럼 둘러쳐진 서북주능선.

그 아래로는 올라온 구곡담 계곡.

그리고 구곡담 계곡을 호위하는 용아장성.

고개를 동쪽으로 돌리면 가야동 계곡과 공룡능선.

멀리 울산바위와 동해까지........

 

오직 막힌 곳은 대청봉 쪽 뿐이고

모든 것이 발 아래로 펼쳐지는 장엄한 파노라마. 

 

저 돌탑은 비바람 거센 봉우리의 정수리에서

천년도 더 된 세월을 이겨내고 오늘도 변함없이

제 모습을 갖추고 있는 것일까? 

 

봉정암 오층석탑은 다른 여느 사찰의 탑과 달리 탑 기저부가 용아陵의 바위이다.

즉 용아陵 나아가 설악산 전체가 이 탑을 떠받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사리탑 전면에 일명 봉황령 고개라는 가야동계곡과 오세암으로 가는 절 길이 있다. 

 

사리탑 바로 옆에서부터 용아장성陵이 시작되고, 끝이 난다.

수많은 사람들을 봉정암으로 불러 모으는 봉정암 진신사리 탑.

 

 

6시 30분경.

날이 서서히 밝아오자 용아장성으로 오르기로 결정하고 봉정암으로 출발한다. 그리고 사리탑으로 오른다. 사리탑에서 밝아오는 햇살을 받으며 공룡능선과 용아장성을 한참 동안 조망한다. 인원을 파악하니 두 명이 없다. 송 대장이 다시 아래로 찾아 나서서 함께 올라온다. 남자 12명! 여자 4명! 봉정암 사리탑을 배경으로 용아장성 산행 단체 기념사진을 한 컷하고는 바로 비 탐방로로 들어선다. 

 

 

7시10분경. 

 

용아예찬(龍牙禮讚)

 

용아(龍牙)의 첨봉(尖峰)을 오르내리며

천상(天上)에서 보낸 하루가 아직도 벅찬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 장쾌한 암봉과

오금저리도록 짜릿한 칼날능선에서 맛 본 전율의 시간을

어찌 짧은 언설(言說)로 이루 표현할 수 있으라? 

 

용아(龍牙)! 용의 어금니를 닮아서 너를 그렇게 부른다고 했는가?

너의 뽀쪽한 봉우리는 영시(永矢)처럼 끝없이 하늘을 찌르고

너의 칼날 같은 등마루의 아찔함은 세상의 번뇌를 한 순간에 끊게 하여,

속인(俗人)으로 하여금 시공(時空)을 초월하게 하니

속(俗)과 선(仙)이 둘이 아니더라. 

 

어느 장인(匠人)의 예기(藝技)로 그대를 다시 빚을 수 있겠는가?

너의 허리를 감싸는 운무(雲霧)가 아니어도,

절정을 향해 붉게 타오르는 너의 가슴이 아니어도,

장성(長城)에 서면 스치는 한 줄기 바람만으로 이미 선인(仙人)이 되더라,

속인(俗人)이 선인(仙人)이 되어 너와 보낸 하루였노라. 

 

가야동과 오세암, 공룡능선이 왼쪽을 지켜주고

수렴동과 구곡담, 귀떼기청이 오른쪽을 보살피니

수십 길 절벽에서 두 다리 후들거려도 마음만은 천국이었노라.

뜀바위, 오체투지의 개구멍바위, 턱 바위, 수십 미터의 직벽하강도 추억으로 치환되고

공룡능선이 가까이 마중하니 설악의 첫 눈이 봉정암 사리탑에 촉촉하더라. 

 

용아(龍牙), 너를 두고 속(俗)으로 돌아와도

바위틈에 찢기고 멍든 몸에서는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가 솟구치니

모두 너의 혜량이 아니겠느냐?

 

잘 있거라, 내 다시 가리니.

 

처음부터 용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가파른 직벽의 하강 길(30여m의 꿀르와르 지대)이 시작된다. 조심스레 내려서 사면을 진행하니 이젠 20여 미터의 직벽의 등반 벽이 가로막고 있다. 3개의 로프가 묶여 있는데 두개는 볼트에 하나는 나무에 묶여 있다. 다행히 다리를 의지할 돌출부가 많아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었다. 

 

이제부턴 용아陵의 심부로 진입한 느낌이다. 급경사를 가로질러 내려가야 하는데 조심하지 않으면 천 길 낭떠러지이다. 완경사 암릉을 오르고 좁고 긴 암릉을 고도감과 조망을 느끼며 여유롭게 지난다. 그러나 시종 좌우의 깍아 지른 암릉 위를 거닌다. 

 

 

어떤 이가 그랬던가.

생각을 많이 하기위해서는 지리산에 가고

생각을 잊기 위해서는 설악산에 가라고.

그만큼 설악산은 아름다움과 위험스러움을 동시에 갖고 있기 때문에

잡념이 자리할 여지가 없다는 얘기이다. 

 

간간이 조심스런 구간들이 나타나고 아침햇살과 더불어 맑은 가을 하늘 아래 단풍과 어우러진 내설악의 전모를 가장 가까이에서 또한 좋은 조망지에서 원 없이 바라본다. 

 

산에 가면 산은 없다.

거기엔 산이라는 추상명사를 구성하는

하늘 바람 흙 돌 나무 풀 동물 등의 구체적인 사물들만 존재한다.

그들이 바로 산의 주인이다.......

인간이란 잠시 쉬었다가 가는 손님일 뿐이다.

산은 사람의 손이 닿지 않더라도

스스로 그렇게 움직이는 원리에 의해 운동한다. 

 

건너로 귀청과 끝청에서 흘러내린 직백운골, 곡백운골이며 쌍폭골의 미끈한 와폭들이 눈부시게 눈길을 끈다. 내외설악을 구분 짓는 왼쪽의 만경대와 공룡능선을 바라보며 공룡능선의 웅장한 암릉 아래로 가야동계곡과 그 끝자락의 오세암이 살짜기 모습을 보인다. 황홀한 선계를 거닐듯 현란하고 아찔한 암릉길을 진행한다. 곳곳이 조망지고 곳곳이 쉼터이다. 정말 여유롭게 내설악의 파노라마를 감상하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맘껏 흐뭇해 본다. 

 

기암으로 어우러져 있는 아름다운 산과 그림같이 펼쳐진 내설악의 전경에 ‘좋다!’ ‘좋다!’가 연발된다. 누구라도 직접 눈으로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날 것이다. 

 

동반자 모두들 카메라를 꺼내 멋진 풍광을 담기에 여념이 없다. 때로는 위험한 직벽을 올라타야 하고 내려가기도 한다. 때로는 협곡을 지나고 때로는 석문도 통과해야 한다. 때로는 밧줄도 잡아야 하고 때로는 동반자의 손을 빌려야 한다. 또 때로는 두발로도 부족해서 네발로 가기도 하는 곳....... 그곳이 바로 용아장성이다. 

 

조선 헌종 때의 여류시인 금원은 설악을 '줄을 이어 솟아있는 연봉들이

눈처럼 맑고 흰 빛이어서 눈과 같은 산'이라고 표현했다.

 

육당 최남선은 '금강산은 수려하기는 하되 웅장한 맛이 없고,

지리는 웅장하기는 하되 수려하지 못한데,

설악은 수려하면서도 웅장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산이 아름다운 것은

암릉과 나무와 숲이 어울려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높기만 하고 죽어 있는 외국의 산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몇 봉인지는 모르지만 이때까지 지나온 용아장성을 다시 한 번 돌아본다. 첨봉들을 오르내린 감회에 젖어 보는 것은 저 용아장성을 지난 사람만이 알 수 있겠다는 기쁨도 누려 본다. 그리고 많은 산과 계곡을 찾아 다녔지만 이곳처럼 웅장하고 스릴 있고 짜릿한 절경은 경험하지 못하였다. 

 

6봉을 지나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 고래등 같은 바위비탈을 오르내리는 곳은 릿지등반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는 시원한 길이었다. 2m 넓이에 100m 정도의 완만한 바위 비탈 좌우로 깎아지른 벼랑이라 고도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2봉은 전망대바위라는 이름에 걸맞게 내설악의 구석구석 남김없이 조망되었다. 소청산장 아래서부터 삐죽삐죽 솟은 용아릉의 암봉들이 끝도 없이 솟아 있고, 발아래 저만치 물러앉았던 오세암은 눈높이로 마주한다. 용아릉이 풍수 동네에서 말하는 명당, 좌청룡으로 공룡능선을 우백호로 서북능선을 거느린 내설악의 맹주라는 것에 아무도 이견을 달지 않았다. 

 

가야동 쪽으로는 짙푸른 소나무 숲이고 수렴동과 구곡담 쪽으로는 직벽에 가까운 암벽으로 용의 이빨을 여실히 드러냈다. 

 

용아장성의 제법 높은 봉우리에 오른다.

설악이 내 품안에 들어오는 것 같다.

건너편 공룡능선 主陵과 서북능선의 주봉인 귀떼기청봉, 중청봉은

여전히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도도하게 우뚝 솟아 있다. 

 

가야동 계곡으로 눈길을 돌리면 오세암이 들어온다.

나도 높은 절벽에서 하강해야 하는데 망설이면서.......

내설악의 백미인 용아장성에서 보니 더 아름답다. 

 

용아장성은 기치창검의 기세를 내세운 설악의 바위들이 죄다 모인 듯하다.

이곳의 바위들은 어느 것 하나 예사로운 것이 없다. 

 

연이어 지는 암릉에 계속 주눅이 든다.

칼날 같은 암릉 길을 지나면서 몇 번인가 오싹함을 느낀다.

자연 앞에서 인간은 언제나 티끌과도 같은 존재이다.

엉거주춤한 자세와 불안한 마음을 떨치지 못하면 끝이 보이지 않는

벼랑으로 떨어지는 것도 한순간 일이다. 

 

인간은 산을 오르고, 숲은 바위를 품고,

계류는 자신을 낮추어 아래로 흐른다........ 

 

곳곳에 고사목도 제법 보인다.

아마 설악산에서 이 구간이 고사목도 제일 많은 것 같다.

이 또한 속인들의 접근을 함부로 허락지 않는 영물처럼 느껴진다. 

 

봉정암에서 수렴동까지 이어진 바위로 이뤄진 성벽.

그 수많은 바위들은 봉정암을 위요하는 성벽이요, 쓰러진 고사목은 욕심으로

덤벼든 속인들의 껍데기인 셈이다. 

 

오늘 같이 매섭게 부는 찬바람을 맞으며, 우뚝 솟은 암봉을 조심 아주 조심스럽게 릿지 하면서 넘고 넘어 14시경 용아장성의 최대 난코스이자 클라이막스라 할 수 있는 나랏님도 어쩔 수 없이 무릎을 꿇고 설설 기어가야 하는개구멍바위에 이른다.

 

개구멍 바위 앞 암벽위에 추모비 하나가 있다.

산을 사랑했던 산사람의 흔적 앞에서 기암괴석은 세월에 무심한 듯

침묵하고 있었다. 

 

푸른 산이 흰 구름을 지니고 살듯

그대 머리 위에는 항상 푸른 산이 있다.

용아의 웃음 위에 함박 피어난 가을꽃의 향기처럼

스러진 우리의 산친구 000 이여.

 

하루 종일 솔향기 퍼서 나르는 설악의 바람과 함께

자유로이 춤출 그대의 넋이여. 1982. 8.12 AC 000’

 

-개구멍바위 위쪽에 걸린 추모동판의 추모 詩- 

 

위험천만의 개구멍 밧줄을 놓치면 .......흔적은???

송 대장이 준비한 자일과 확보슬링으로 안전벨트를 만들어 몸을 두른다. 암릉간에 좁은 공간을 두고 큰 바위가 얹어져 그 사이로 기어 나가야하는 코스이다. 그러나 우리는 송 대장의 도움으로 직벽을 서서 건너기로 했다. 아래로는 깊은 절벽이라 고소공포증이 있는 분들이라면 발을 움직이기 힘들 구간이다.

 

비 탐방로라 진행자들이 스스로 메어놓은 낡은 픽스 로프가 있으나 각각의 진행자가 스스로 자일을 설치하여 진행함이 안전할 것 같았다. 일부 회원들이 중간에서 발을 움직이지 못하고 주저앉는다. 이 상황에선 안 갈수 없는 상황이다. 

 

설악산은 너무나 많은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그중에서도 설악산 용아장성은 산이란‘아름다움’과‘두려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갖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이제 암릉상의 난코스는 벗어난 듯하다. 

 

산을 오른 높이만큼 , 나는 낮아지려고 한다.

神이 오지 말라는 곳도 인간은 거부하고 올라선다.

 

山이 사람과 다른 점이 있다면 山은 사람의 사랑을 구속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는 왜 오늘도 산을 오르는 것일까 ?

 

이 추위에.......이 가을에....... 추위에 떨면서 오른 산꼭대기에서 나는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가? 심신단련을 위해서 산을 오르는 것인가?

 

그러나 그것뿐일까 ? 대답은 간단하다.

나는 산을 닮으려하는 것이다

산은 늘 변화하면서도 언제나 변함없는 모습으로 그 자리에서 서 있다.

또 언제나 변함없는 모습이면서 도 늘 변화하는 심오한 존재다.

 

그렇다

산은 결코 체력단련을 하러가는 곳이 아니다

놀러가는 곳은 더욱 아니다 ,

산은 바로 마음 공부하러 가는 곳이다.

 

언제나 흔들리지 않고 의연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산을 배우러가는 곳이다 .

산은 언제나 그 높음과 넓음 그리고 깊음으로 나에게 무한의 깨달음 을 주곤 한다.

산을 바라보는 그 자체가 깨달음이다 .

 

그래서 산사람은 늘 히말라야 설산을 꿈꾸게 되는 것이다.

나도 언젠가는 설산의 품에 안겨 보리다.

네팔의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을 계획하고

오늘도 꾸준히 열심히 준비하며

머지않은 시기에 반드시 히말라야 산맥을 트레킹 할 것이다.

 

산은 내게 하나의 話頭이다

오르고 또 올라 깨치지 못하는 화두인 것이다.

떠나기도 전에 마음은 벌써 설악의 용아장성을 머리 속에 그려 본다. 

 

산을 오른 만큼 나는 낮아지려고 한다.

겸허함 마음으로 산에 안겨 나는 나보다 못한 이웃들에게 크고 넓고 깊은 산처럼 넉넉한 이웃이 되는 꿈을 꾸어본다.

 

남들이 하지 말라고 하면 더하고 싶고.......

가지 말라고 하면 더욱 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철부지 아이 때나 어른이 된 지금이나 별반차이가 없는 것 같다.

 

다시 옥녀봉으로 출발한다. 오르고 내리기를 다시 수십 차례 턱 바위 뜀바위 옥녀봉을 지나고 수렴동 계곡으로 내려선다. 

 

진정한 산객이 되기도 전에 출입통제구역을 넘는 위법을 저지르는 마음이 불편하다. 이 또한 산을 사랑하고 진정한 산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자위하면서 오늘도 위법을 또 저지르며 위험천만의 용아장성을 향해 힘겹게 다녀온 허접한 山行記를 또 한 번 적어본다.

 

 

<용아장성릉을 산행하면서 느낀 소감을 한마디 한다면, 용아장성陵 종주로 인하여 위험한 코스를 통과하고 암벽을 오르내릴 때 서로 돕고 격려하며 힘을 나누는 것은 산행에서 얼마나 값진 것인지 절실히 느껴본다.>

 

 

탐방로에는 봉정암을 통해 구곡담계곡을 통해 내려오는 수많은 산행인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붉게 물든 단풍들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참 곱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서 걷기를 1시간여 백담사에 도착한다. 17시경이다. 그런데 용대리로 가는 버스를 타려는 줄이 300m 는 되어 보였다. 줄서기를 포기하고 용대리까지 걸어가기로 하고 다시 1시간을 걸었다. 18시가 되어서야 기다리는 버스에 도착한다. 

 

다시 돌아오는 길.  

용대리 주차장에서 맥주 한 캔! 그 맛은 무엇하고

비교할 수 있으랴.

 

그리고 도시의 현란한 불빛에 심란해지는 마음은 다시 산으로 떠날 준비를 한다. 

 

 

송 대장 정말 고맙습니다.

 

오늘도 산행할 수 있음에 감사드린다.

 

 

2007년 10월 22일. 

 

해질녁 무렵 사무실에서.